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청각장애 4

소리는 무엇일까?

한낱 ‘광활’이라는 어휘로 감히 규정지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총체가 ‘절대적인 무’의 틀 안에서 혼조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훗날 과학자들이 ‘빅뱅’이라고 일컫는 폭발이 있었습니다. 그 폭발로 인해 ‘수소’와 ‘헬륨’의 잉태물을 내 보내며 ‘큰 소리’를 냈는데 이를 성경에서는 창세기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표현하고, 과학자들은 원자들의 진동에서 태초의 소리를 찾습니다. 분명한 것은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세계는 빛(쿼크 입자 충돌)보다 소리(원자의 고유 진동수)가 먼저 있었다는 겁니다. 원자들의 진동(주파수)을 음파를 통해 전달할 기체가 우주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암튼 진동(주파수, 진폭, 위상)이라는 소리의 본질 그 자체는 태초부터 지금까지도 우주에서 장엄하게 울러 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

- Philosophy 2021.10.07

이 땅 위 모든 코다(딸)에게 전하는 농인 아빠의 진심('나는 코다입니다'를 읽고)

부조리한 생의 한 가운데서 나의 삶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것 그 자체가 부조리한 것임을 그럴 듯하게 느끼게 될 즈음이었다. 나의 귀에는 '고요'가 악다구니치다 지쳐 '고요'해지다가, '고요'로서 '고요'를 깨뜨린 순간 그 '고요'는 순식간에 들고 일어나 맹렬한 기세로 나의 시야를 가로 막고 가슴을 출렁거리게 했다. 그 '고요' 때문에 나의 심장은 잠시도 '고요'할 겨를이 없었다. 수많은 의문을 속으로 밀어 넣으며 견디기가 평생의 짐이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삶이란, 마치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의 밤 하늘 외로이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부유하듯이 고독하게 건너는 낙타의 심정이랄까. 체화할 수 없는 '분노'와 '체념'이 달음박질 하듯 연이어서 나타나고 사그라지기를, 수미산에 쌓인 돌멩이 수만큼 반복하니 그 흔적은..

- Philosophy 2021.10.07

들리지 않는 자의 외로움에 대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에는 늘 그들이 쏟아 내놓은 말들로 장벽을 쌓는다. 말로 쌓은 장벽의 두께는 말들의 심연을 가늠할 수가 없고, 그 장벽의 높이는 말들의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무의미한 말들로 쌓은 장벽은 마치 투명한 것처럼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여, 귀신조차 잡아내는 조요경마저도 짚어 낼 수가 없었다. 하얀 색 마스크는 장벽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회반죽처럼 철옹성의 위용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서 차별받고 있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의 찰나의 고민은 선의를 가장한 차별과, 호의를 등에 업은 무시로 가득 찬 그들의 허다한 말들 사이에 파묻히기 일쑤다. 메마른 사막의 버석거리는 모래처럼 거뭇한 마음 사이로 스잔한 바람이 한바탕 스치운다. 간혹, ..

- Philosophy 2021.08.27

보청기에 대한 단상

잘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을 착용했으니 어쩌면 거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나의 '보청기'에 대해 글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짝 기록을 남겨 본다. 5살 나이 때 동산 병원에 가서 청력 검사를 했었다. 특이하게 생긴 인형과 평범한 장난감이 들어 있는 사방이 막힌 방에 나를 데려다 놓더니, 그 중에 자동차 장난감을 내 손에 쥐어 주고는 밖에 나갔다. 창문 밖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지켜 보고 있었는데, 그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 신나게 놀고 있다가, 어떤 묘한 느낌에 다시 창문을 바라보니 아버지는 사라지고, 어머님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받았던 청력 검사가 '시각강화청력검사' 였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세월이 흘러 특수..

- Philosophy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