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 Philosophy

사랑하는 딸에게

굴레를 벗어나 2021. 11. 24. 21:56

보이지 않는 ‘추위’라는 것들이 보이는 것을 통해 드러내는 계절인지라 아빠는 여태껏 길가에 떨어진 낙엽의 두께로 ‘겨울’의 깊이를 헤아려 왔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 해가 저물어 감을 매년마다 다가오는 사랑하는 딸의 종업식으로 헤아리게 되었구나. 푸른 빛으로 싱그러움을 뿜어내던 한 여름철의 자취와 너의 귀여운 모습을 소중한 추억과 꿈들로 남겨두고,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깊이 눌러 쓴 글로서 전해 보려 한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려 없애는 행위는 나무의 자기 성찰이다. 성찰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말없이 우뚝 서 있는 나무조차 지니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나무가 오래 살 수 있는 연유도 그 성찰을 깊이, 그리고 부단하게 추구하기 때문이겠다. 때로는 그 성찰이 조금의 변화에도 집요하다고 느끼리만치 엄격하다. 성찰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한 치의 거짓없이 직면한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본다는 의미의 한자 ‘相’은 ‘나무(木)를 눈(目)으로 본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사랑하는 딸. 너도 나무처럼 부단히 성찰을 해야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나왔던 하루하루를 직시해보렴. 여러 선생님들의 잔잔한 조언과 친구들의 살가운 인사가 너의 한 해를 얼마나 행복하게 채웠는지 짚어보렴. 나무가 한 해 내내 품었던 나뭇잎을 하나씩 떠나보내며 반성하듯이 주변의 사나운 미움에 온화한 미소로 답하지 않았는지, 거친 행동에 부드러운 포용으로 감싸지 않았는지, 차가운 냉대에 따뜻한 환대로 대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렴.

너의 찬란한 지금의 순간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 듯이, 너의 한 해의 마무리 하는 이 순간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성찰’이라는 것을 너도 연습해본 적이 없었을테니, 이 글을 읽는 날부터 연습을 해보렴. 그 연습 후에라야 네가 가늠해지지 않던 것들이 이해가 되는 언어로 다가올 때 비로소 너 자신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겠지. 후회와 부끄러움이 꿰맨 자리 없이 포개지고 갈라져서 어느 덧 희미한 추억으로 남겨질 때 비로소 너는 웃으면서 자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겠지.

사랑하는 딸. 이 글로 무뚝뚝한 아빠의 마음을 전하려 한다. 어리게만 느꼈던 너의 해맑은 움직임과 찬란한 눈빛을 더듬으면 나중에 훌륭하게 자랄 너의 모습이 자뭇 기대가 된다. 예쁜 마음으로 자라나렴. 늘 사랑한다.

항상 노래를 반음 낮춰서 부르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