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 Philosophy

말이 어눌한 이들을 위한 위로

굴레를 벗어나 2022. 1. 19. 20:04

정보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실시간 대면이 가능한 우리 시대에서는 글이 사라지고 말이 득세하게 된다. 여기서 읽은 책과 글이 말로 쏟아지지 않는 일부 우리들은 영원히 불화를 겪을 밖에 없다. 내가 써온 글만큼만 나의 언변이 뒤따라와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은 언제나 사막의 신기루였다. 얼마 페친이 글에서도 나와 비슷한 고충이 묻어나왔다. 집단적 발화 장면에서 나는 후달리는 말빨(?) 때문에 심적 부담이 걸까.

사람 개체마다 다른 개인 성격 또는 자질 차이 때문이라고 넘겨짚기에는 설명이 한참 부족하다. 우리 사회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선망과 동시에 씻을 없는 나의 콤플렉스는 어쩌면 필연적인 요소인걸까. 청인들과 많이 부대껴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나는 나의 장애와는 별개로 '화려한 언변' 대한 커져만 가는 갈망 때문에 무척 쓰라렸다.

얼마 읽은 사기 열전에서 눈에 띄는 일화가 나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이에 공유 글을 올려 본다.

상림원은 폐하의 사냥터로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을 '상림위'라고 하는데, 관리는 무척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어느 황제는 상림위에게 짐승들에 관한 책에 대하여 10가지를 물었지만 모두 답변이 어눌하여 시원하지 못했다. 그런데 옆에 섰던 색부(호랑이 관리인) 자기 능력을 돋보이려고 화려한 언변으로 황제의 질문에 대해 상세하게 대답했다.

황제가 '관리는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소?' 라며 화려한 언변을 자랑했던 색부를 상림령으로 삼으라고 명령을 했다. 이에 옆에 있던 장석기는 한참 생각하다 앞으로 나와 말했다.

"강후 주발은 한고조(유방) 도와 천하를 통일했고, 동양후 장상여는 나라에 공을 세웠지만 사람은 일찍이 어떤 일을 말할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색부의 수다스러운 말재주를 본받으라고 하십니까!

하물며 진나라는 일을 빨리 처리한다며 도필리와 같은 낮은 벼슬아치를 임용하였더니, 서리들도 다투면서 서둘러 일을 처리하고 사소한 것을 자질구레하게 파헤치는 것으로써 뛰어나다고 뽐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일을 형식적으로 처리할 백성을 가엾게 여기는 정이 없는 폐단이 생겨나고 나라는 나날이 쇠퇴해 이세황제에 이르러 천하는 흙더미가 무너지듯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색부의 말주변을 높이 사서 파격적으로 승진시키려고 하시는데, 신은 천하 사람들이 바람 따라 휩쓸리듯 말재주에만 지나치게 힘써 다투고 실제적인 이익을 꾀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에 황제는 옮은 말이라 여겨 색부를 등용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