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백제의 미소’라며 극찬을 했던 서산마애삼존불상을 실견하기를 원했었는데, 우연찮게 명절 귀성길에 들리게 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뛰어난 구라와 글빨(?)에 묻어나는 그 감동을 나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나의 수준 낮은 심미안이 그 아름다움을 캐치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안고서 살펴 보았다.
사진을 찍을 때 조명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조명이 사진의 9할이랄까. 조명의 종류에 따라 주광과 측광, 조명의 방향에 따라 직광, 측광, 사광으로 나뉘는데, 사진과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조명의 방향이다.
직광(정면광)은 인물을 단지 건조한 피사체로서 기능하도록 입체적인 개성을 죽인다. 측광(측면광)은 인물이 가진 내면의 힘을 강렬하게 드러내도록 명암대비를 뚜렷하게 하는데, 측광을 가장 많이 사용하던 시대가 2차 세계 대전때였다.(대표적으로 윈스턴 처질 사진이 떠오를게다), 사광은 45도 상부측면광인데 인물의 조명 반대쪽 빰에 역삼각형 그늘을 만들어 입체감과 개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빛의 마술사 램브란트가 즐겨 사용하던 기법으로 흔히 ‘램브란트 조명’이라고도 불린다.
서산마애 삼존 불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미소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아마도 빛(조명)의 위치에 따른 명암 및 입체감의 변화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측광이 비치는 아침 때의 강인한 미소와 사광이 비치는 초저녁때의 온화한 미소가 아마도 그런 조명의 효과 때문이겠지.
다만, 한 가지 덧 붙이자면 마애삼존불상의 바닥 또한 불규칙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빛을 난반사하여 주변을 밝게 만들어 주는 배경 조명(반사판) 역할도 한다. 궁궐의 바닥 박석이 모두 우퉁불퉁한 것은 햇빛의 난반사 힘을 빌려 임금의 권위를 드러내려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혹자들은 새벽 또는 저녁 노을 때의 마애삼존불상이 가장 예쁘다라고 하는데, 나의 사견으로는 빛이 강렬한 점심 때에 사방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곳 가운데서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삼존불상의 모습이 가장 신비로울 것 같다.
암튼,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 사진가의 시선으로만 그 미소의 아름다움을 해석할 식견 뿐이고, 인문학적으로 그 미적 가치를 논하기는 나의 철학이 부족하다. 하지만 뭐 어떠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으로 그 즐거움에 자족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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