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 Philosophy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중앙집행위원으로 지낸다는 것

굴레를 벗어나 2023. 7. 11. 14:22

이른 아침 눈을 비비며 뒤적대는 막내딸을 달래서 옷 입히고, 아침 식사도 거른 채 학교에 데려다 준 후, 막히는 출근길을 뚫어가며 겨우 지각을 면했다. 다행스런 한숨에는 식은땀이 묻어졌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교육부와 타 교원노조의 홈페이지를 들려 교육계 소식 및 동향을 파악해본다. 소수노조의 특성상 정보의 수합이 느릴 수밖에 없고 그 흐름을 놓치면 그만큼 피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번 단체교섭 과정에서 타 교원 소수노조는 정보를 놓쳐 교섭 자체를 참여하지 못했던 것을 뒤돌아보면 얼마 전 단체협약을 무사히 마친 우리 장교조는 정말 천운이 뒤따랐던 셈이다.

뉴스를 검색하고 있더니 카톡으로 정책실장이 연거푸 720() 장애인교원인사매뉴얼 관련 교육부 관계자와 회의 참석, 721(), 22()에는 교육부 정책연구 워크숍 참여 인원을 정해야 한다며 중집부 인원을 독촉한다. 3일을 연이어 4시간 이상 이어지는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비현실적 노조 업무량에 일순간 스트레스가 된다. 더구나 22() 당일에는 함께하는 장날행사 또한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난맥상이다.

쌓여가는 학교 업무와 당장에 다음 주로 다가오는 장교조의 큰 행사를 준비하느라 모든 중집부 임원들이 신경이 곤두섰다. 더 나은 행사를 위해 이어지는 치열한 논쟁의 끝에 뒤따라 매번 엎어지며 지지부진한 일의 진척에, 서로가 화를 내는 상황이 도처에 벌어졌다. 살벌하게 부딪치는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의 다툼에 어린 중집부 임원들이 조마조마하게 쳐다본다.

함께하는 장날초대장 발송 여부와 참석자 명단을 확인해보니 고작 20여명 남짓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중집부들의 열정조차도 조합원들에게 만족스럽게 와닿지 않았던 걸까. 자책감만 지난하게 쌓인다. 독려를 해보고자 장교조 전체 톡방에 행사 참여사무실 마련을 위한 후원금얘기를 살짝 꺼내어 보았다.

사무실 마련에 대한 다양한 조합원들의 의견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사무실이 없어서 매번 빌릴 수 있는 회의 장소를 탐색하는 것조차도 일 분 일 초가 바쁜 중집부에게는 과중한 짐이 마치 가벼운 짐처럼 여겨지게 된지 오래된 이 시점에서 그 의견에는 야속한 마음이 앞섰다.

비용을 지불해가며 기껏 빌린 회의실마저도 예약한 시간에 쫓겨 항상 논의해야 할 것들을 남겨둔 채 쫓겨나듯이 회의실을 나와야 했다. 결코 지체장애인에게 호락 호락하지 않는 지하철과 엘리베이터의 기나긴 대기 시간을 견디며 무거운 휠체어를 밀어 오는 중집부 임원의 땀방울은 마치 나의 눈물같았다. 사무실 없는 설움은 조합원들에게 미진하게 전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걸까.

본인들도 모두 장애가 있으면서 각자 맡은 학교 업무와 돈 한 푼 못 받으며 노조 일에 전력으로 매달려야 하는 이런 중집부의 일상은 간혹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감이 수시로 명멸한다. 긴급하게 올라오는 각 장애별 부위원장들의 도움 요청에도 응해야 한다. 1정 연수 때 편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조합원들의 얘기에 각 장애부위원장들은 본인의 바쁜 수업 시간을 쪼개 각 교육청 연수 담당자와 장학사에게 항의 전화를 하며 설득과 윽박질을 해야 했다. 기나긴 실랑이 끝에 고충이 해결되면 그 수고스러움에 대한 감사를 중집부 임원은 어느 누구에게 듣기가 무척 드물었다. 되려, 허다한 조합원들의 고충 처리와 중집부 임원들의 맥 빠지게 하는 조합원 탈퇴 소식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탈퇴의 사유에 에둘러 표현한 미숙한 중집부 탓을 어떻게 감내를 해야 할지 서러운 마음뿐이었다.

간혹, 올라오는 중집부가 좀 더 일을 해야 한다는 조합원들 독려의 메시지를 읽다보면 숨이 턱 막혔다. 체화되지 않는 중압감을 이겨내려 공황장애 약을 먹는지가 벌써 오래 되었다. 중집부에게 더 뛰어라는 조합원의 얘기와, 참여가 저조한 조합원의 행동 사이를 어떤 인과로 연결시켜야 할지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나에겐 전무했다. 나의 무지가 답답함을 불어 일으키고, 그 답답함은 텅빈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으로 사그라졌다. 어디까지가 나를 비롯한 중집부 임원들이 감당해야 할 지경의 것인지, 헤아릴 수 없는 안개 속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4세대 나이스 문제에 대해 비협조적인 타 단체를 달래며 오로지 홀로 대응하고 있는 위원장의 방금 카톡으로 올라온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경과보고 글을 읽어 보노라면, 나의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위원장의 노고에 어떤 위로의 말을 던지는 것조차 말문을 막히게 한다. 매달 시도공동대응단 업무조차도 위원장이 감당하고 있다.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거의 없다. 그마저 중집부 임원로만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시도지부가 세워져야 장애인 교원을 위한 교육 현장의 근로조건이 개선된다고 믿기에 응답없는 메아리 동굴 속에서 위원장은 묵묵히 전진하고 있다.

수많은 정책 연구와 법률 쪽 일을 거의 혼자서 감내하고 있는 정책실장, 노조 전임자가 없어 엄청난 양으로 처리해야 하는 노조 사무 관련 일을 미친 듯이 해내고 있는 사무총장, 1만원의 회비조차 무척 비싸다며 소중하게 쓰이길 원하는 조합원의 바램에 부응하기 위해 한 푼이라도 줄이려는 재정국장, 각 장애별로 쏟아지는 요구의 대응과 의견의 수합을 해야만 하는 장애별 부위원장들, 본인의 심적 에너지 소모가 심한 조합원 상담의 업무를 하는 상담소장, 우리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이고 예쁘게 전하기 위해 각종 소프트웨어를 직접 배워가며 영상물 및 이미지를 밤새워 만들고 있는 홍보실장. 이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헌신하는 것일까?

학교 수업과 연이어진 부장으로서의 업무, 각종 교직원 회의에는 아무런 편의 지원없이 수행하며 마음 속 할퀴어진 상처의 쓰라림을 살살 달래어본다. 부족한 노조 운영비를 충당해보려 쉬는 시간마저도 어디에 후원을 받을 곳이 없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마침 장애 관련 사업 공모 안내가 떴다. 부략부략 사업계획서와 추진 타당성을 검토해보고 사무총장에게 이것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다보니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을 하러 가야 한다. 나는 대체 무엇으로 교사임을 증명해야 하는 걸까?

청각장애 조합원과 청각장애 중집부 임원들은 거의 나의 후배뻘이다. 이 후배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장교조에서 마음껏 드러냄으로써 얻은 그 자신감이 견고한 비장애 교직사회를 균열낼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희망했다. 그래서, 내가 일개 조합원 시절이었던 3년 전에 서울역 롯데리아에서 통역이 없어 회의 참여가 어려웠던 후배 청각장애 중집부 임원의 현실을 보고 분개했었다.

값비싼 통역 비용을 소박한 노조 예산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통역 관련 단체에게 읍소하다시피 부탁을 했다. 그 덕분에 3여 년이 지난 지금 현재 중집부의 절반 이상이 청각장애 후배로 채워져 맘껏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있다. 그 모습이 자랑스럽다가도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후배 중집부들의 헌신에 대해 미안함이 앞선다. 그러한 양가의 감정을 가지고서도 정작 나는 위원장과 더불어 노조를 이끌어가야 하다보니 때로는 가혹하게 중집부 임원들을 몰아세울 때가 많았다.

중집부 동료들을 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회의 장소를 찾아 이동할 때마다 휠체어에 온전히 육신을 맡겨야 하는 지체장애 부위원장을 배려하지 못했다. 시각장애 중집부 임원들마다 서로 다른 성격처럼 나의 팔꿈치 잡는 강도에 맞춰서 나의 발걸음도 조절해야 하는 필요한 세심함을 처음에는 미처 몰랐었다. 식사의 곤혹스러움이 식기와 음식 메뉴에 따라 달라지는 뇌병변 장애 조합원의 고충도 그의 침묵 뒤에 뒤늦게서야 눈치채었다. 서로에 대한 앎의 과정은 그래서, 너무나 감동스러웠고, 우리 장교조에서만 가지고 있는 자랑할만 소중한 가치라 자부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장애유형의 교사들이 모여 자기와 다른 장애 영역의 깊은 면을 이해한다는 감동스런 스토리야 말로 진정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게 되는 사회의 시발점이 되리라 믿기에 이를 책으로 정리하여 모든 이와 나누고 싶었다. 지난 3년 가까이 23차례 실무교섭 과정에서 치열하게 장애에 대한 몰이해로 일관한 교육부를 상대로 우리가 열심히 설득한 그 논리를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교육부 교섭위원 앞에서 장애인이여서 장애인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라고 갈파하던 위원장의 사자후도 어느 속기록에 어떤 장면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짚어보고 싶었다.

폴더를 열어 23차례 실무교섭의 속기록 분량을 확인해보니 무려 1천 페이지가 넘었다. ‘이걸 언제 정리해야 하나라는 막막함이 앞섰다. 이 작업을 같이 할 조합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중집부의 한계가 무척 원망스러웠다. 문득 책 갈매기의 꿈에서 제자 플래처가 스승 조나단에게 우리를 배척하고 외면하는 타인을 위해 왜 높이 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지 질문하는 장면이 떠올려졌다.

사랑이란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타인의 가슴 속 숨어 있는 선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그 책의 문구는, 나날이 갈수록 지쳐가는 중집부 임원들의 뒷 모습들을 보면서 그 문구는 잉크 속에서만 실존가능한 의미들의 조합일 뿐이라며 외면하고 싶어졌다. 예수조차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부디 이 잔을 자기에게서 거둬달라고 하지 않았나. 괜히 심신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싶은 후회만 남기고 서둘러 열어놓은 속기록 파일을 닫았다. 수업을 할 다음 교실로 복도를 걸어가며 엉클어진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면 조그마한 고민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수업 도중에 작년 10월에 시작된 각시도교육청의 청각장애교원 편의 미제공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중인 인권위 조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사 진척 과정과 함께 조사 인터뷰 대상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조사과정이 한시라도 늦어지면 안된다는 초초감에 부략부략 챙겨야 했다. 조사관은 그와 동시에 청각장애인 교원들의 고충을 항목별로 정리해줄 수 없는지 요청이 있었다. 이틀 밤새워 작성해서 보내드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겨울에 청각장애 교원을 위한 편의 미제공의 부당함을 얘기하고 국가인권위 등 언론에 알려야 한다고 주변 청각장애 교사들에게 함께 동참할 것을 요청했지만 다들 험난한 가시밭 이 예상되는 그 길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 혼자 여흐레 밤을 미친 듯이 지새워가며 60여 페이지의 진정서를 작성했다. 더불어 흩어져 있던 증빙 자료를 퍼즐조각 맞추듯이 하나 하나 모았었다. 그러자 점차 뜻을 함께하는 이가 모여들어 결국 국가인권위 앞에서 우리 나라 사상 최초로 청각장애인 교원의 단체 진정을 접수하며 기자회견까지 하게 되었다. 거대한 서사의 시작은 우리들의 자그마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던 셈이다. 이제는 인권위의 직권조사로 전면 전환이 되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모두 샅샅이 들추고 있다. 부디 빠른 시일 내 인권위의 조사 결과와 권고가 내려졌으면 좋겠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더 이상 채찍질할 수 없어, 가여운 몸뚱아리를 잠시 내버려두었더니 깜빡 잠이 들어 저녁 식사마저 건너 뛰었다. 물 한 잔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 넣었더니 또다시 카톡이 울린다. 저녁 9시에 장애인 교원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 위한 법률 TF의 회의가 있으니 빨리 오란다. 2주마다 모이는 법률 TF’회의에서는 방대한 장애인 관련의 각각 법률에서 조항과 조항 사이에는 쉽사리 이어지지 않는 어려움의 한숨으로 가득 차 있다. 피곤에 절은 각자의 열정을 조금씩 십시일반하여 순수한 우리들만을 위한 ‘(가칭)장애인교원 편의 증진 및 교육활동 보장에 관한 특별법제정을 위해 하나씩 탑을 쌓아간다. 어느 덧 밤 12시를 넘어 새벽의 어스룸이 옅어진다.

다시, 내일 아침이다. 이 일을 어쩌면 영원히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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