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대연 10주년 소고
농대연을 위한 변명
D 선배.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아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함께 농대연을 활동했던 풋내기 나는 모습을 본 것이 1999년이었으니 근 10년만의 만남인 셈이지요. 근황을 묻는 나에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얼버무리는 듯한 손짓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괜한 질문을 했다 싶어 화제를 돌리려 과거의 추억을 꺼내는 과정에서 ‘농대연 10주년 기념’ 이야기도 함께 나왔었죠. 그 때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선배, 이제 농대연은 없어져도 상관없지 않나요?’
왜 필요가 없는지에 대한 기본 명제는 접어두고서라도 우선 그 후배의 질문이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우리 청각장애 대학생을 위한 어떠한 교육적인 지원과 사회적 인식조차 전무하던 90년대를 지나, 이제는 간신히 장애지원에 대한 면피정도의 서비스 혜택을 제공하는 학교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끄럽지만 그간 걸어왔던 농대연이 이룬 자그마한 결실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소망하던 것들이 조금씩 현실이 되면서 농대연의 활동은 그 후배의 말대로 점차 퇴조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경쟁시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적으로 진행된 인권운동의 퇴조와 관계가 있겠지요. 요즘 인권운동에서조차 ‘경제논리’에 모든 것을 재단하는 각박한 세상에서는 농대연의 모토인 ‘교육권 쟁취’ 구호만 외쳐서는 그저 막연히 뜬 구름 잡는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처럼 얽키고 얽켜 있는 차별적인 교육환경을 타파하기 위한 농대연 운동에는 무엇보다도 현상에 대한 명철한 분석과 추친력이 과거보다 더 요구되는 운동으로 변해왔던 거지요.
‘광란의 청년취업대란’ 앞에서는 농대연에 헌신적으로 몸담으면서 이 사회의 구조를 바로 인식하기 위한 고민과 토론에 밤을 지새우던 후배들이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 각개 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보다는 당장 ‘나’의 취업,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자위할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복잡하고 난해한 법을 따져가며 우리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읽고 해석할 뛰어난 리더가 필요로 했고 그런 사람을 회장으로 삼아왔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농대연 멤버로서 남았지만, 전문지식과 추진력을 갖지 못한 후배들은 때로 자신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목표를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이제는 ‘농대연’이라는 이름이 자신의 커리어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수단으로 전락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D 선배. 예전에 선배가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똑똑한 리더와 함께 열정이 넘치는 농대연 회원의 결합만이 우리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러나, 선배의 그 관점에서는 ‘똑똑한 리더’와 ‘그걸 따르는 회원’의 이분법적 사고가 깔려져 있습니다. 즉 리더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홍보물을 만들고 거리에서 피켓을 들거나 행사를 준비하는 회원의 동력이 중요하다는 일종의 분업론인 셈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저에게 잘못된 분업체계처럼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분업체계 속에서 똑똑한 리더는 농대연의 활동을 통해 앞으로 농사회에서의 자신의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가겠지만, 회원들은 결코 농대연 회원으로서의 전망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농대연의 본래 취지에 대한 위험하고도 엄청난 오해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농대연의 모습은 선배의 예언(?)처럼 거의 엇비슷하게 이뤄왔지요. 그런 시스템에서 운영이 이뤄지다보니 필연적으로 오는 리더와 회원들간의 반목과 갈등 끝에 본래의 농대연 설립 취지가 무색무취해지는 위기의 순간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대연의 존속 유무에 대한 의문을 그 후배가 품어왔던 것 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무엇보다도 농대연 회원들이 우리 현실에서 가장 소외되고 억압된 부분과 닿아 있다는 점에서 농대연의 존재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이 불공평한 교육서비스,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가운데 자기 내부의 변혁을 겪기 마련이고, 그것을 농대연 회원 모두가 공유함을 통해서 우리 농대연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또한 각성과 내부 변혁을 겪게 될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수없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농대연의 운동이 결국에는 잘못된 사회구조의 변화까지 바라보는 힘 있는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지요. 즉, ‘리더의 이끎’이 아니라 ‘회원들의 각성’이 살아있는 농대연을 만들어 가는 거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농대연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던 그 후배의 이야기에 저는 그렇게 답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한 명의 리더 목소리가 아니라, 이 왜곡된 현실을 넘으려는 많은 회원들의 간절한 희망이 모여서 농대연의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기에 모두가 농대연을 빠져나가고 단 한 명의 회원이 여전히 차별적인 교육 환경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고, 홀로 외로이 농대연에 남아 인권을 주장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서도 농대연의 존속 가치는 아직도 여전한 거라구요.
농대연이 비록 비틀거리기는 했으나 10년이 지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훌륭한 리더의 재능 덕분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늘 좌절과 희망 사이를 오가면서 우리 청각장애 대학생들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맥진하는 농대연의 회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였습니다. 그걸 알기에 저는 늘 갈등과 반목으로 떠나간 농대연 회원들의 복귀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D 선배. 그리고 농대연이 10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더 중요한 이유는 농대연의 설립 목적이었던 ‘차별적 교육환경 철폐’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곳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농대연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농대연 존속 가치’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 시점에서 저는 농대연의 설립 취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차별적 교육환경 철폐’ 얼마만큼 나아졌습니까? 농대연은 아직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을겁니다.
D 선배. 농대연의 첫 걸음마를 내딛었던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모두가 같이 나눠 마신 술 한 잔속에 담겨져 있던 그 결의와 희망을. 그 때 우리들은 진심으로 빌었죠. 이 ‘차별적인 교육환경’이 모두 개선되어 농대연이 필요 없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그 날이 오면 다 같이 모여 기쁨의 춤을 추며 술 한 잔 나누자고요. 이제 농대연이 설립된지 10주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약속했던 그 날이 오기에는 10년이라는 긴 세월도 부족했던가 봅니다. 술 약속은 뒷 날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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