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농인을 접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할 것이다. 음성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벗어나 손으로 나누어지는 대화들은 비단 수화노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어떠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농인들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 사람은 건청인 사회에서의 자신과 농아인들 사이에서의 자신을 비교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을 어떤 기준에 맞춰 평가하고 삶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가? 농아와 청각장애라는 두 용어의 보이지 않는 큰 차이점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지는가? 비단 건청인들만이 아닌, 난청인을 포함하여 건청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농인 자신 스스로도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런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 이전부터 농아인과 난청인들 사이에 농문화, 농사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지만 인터넷상의 짧은 지면에 통해 올려져 온 단편적인 의견들의 나열 뿐 이였고 본격적으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촉발점은 1년 전, 필자의 문제제기로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화두에 시선을 집중하게 된 2002년 2월에 있었던 농대연의 여름 엠티였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의 수화로 이루어진 토론은 수화를 모르는 난청인, 건청인들과 농아인 사이에 대화의 단절에서 오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논리적인 의견의 진술이 아닌 피상적이고 즉홍적이며 주위의 이야기가 그러하더라는 식의 주장이 난무했을 뿐 이였으며 더 나아가 농대연의 토론게시판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농정체성을 논의하기 위한 담화의 틀을 구성하여 확대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농사회, 농문화에 대한 자료로 삼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하겠다.
즉, "농문화, 농사회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화두이며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이다. 그 동안 우리에게 박탈되어진 기본적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으로 우리의 역량을 그곳으로 결집시켜야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농사회, 농문화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논하지 않고서 사회와 환경 속에 부닥치는 수많은 문제 가운데 자신을 확립하기는 어려운 시점에 살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정체성을 확립해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문화, 농사회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필자는 농문화, 농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즉, 농정체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의 틀을 만들고자 그에 따라 필자는 5 가지 주제를 논의의 축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첫째, '장애인이 아니라 농인' 라는 주장에 함의되어 있는 장애와 비장애를 가로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둘째, 정체성이란 무엇이며 그 문제가 어떤 성격의 문제인가?,
셋째, 농문화, 농사회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그것을 구성케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넷째, 농문화, 농사회를 지탱하는 정체성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다섯째, 현재 농사회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며 농사회에서 소외되기 쉬운 난청인들을 어떻게 언급되어야 하는가?
물론, 농아인과 난청인의 주류에 대한 문제와 갈등, 그리고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필자의 입장과 관련하여 2bi의 성공적 실행을 위한 밑바탕으로서 농문화, 농사회의 정의 필요성과 수화학습의 방법, 또한 현재 청각장애인들에게 크게 대두되고 있는 인공와우수술에 관해서도 이 지면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언급을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고 논의되어지는 '정체성'이란 형이상학적 문제이며 개인의 동일성과 같은 부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동일성이 아닌 농사회라는 집단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농사회의 정체성과 농아인의 정체성 탐구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양자 사이에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논의되어지는 담화는 농사회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지 농인이 어떠한가에 대한 고찰은 아니다.
더더욱 확연히 밝히는 건데, 지금까지 '농아인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커뮤니티의 다양한 수단에 의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며 올려져 왔고 독자들에게 읽혀져 왔지만 그것이 농사회의 정체성 형성과 논의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을 뿐더러, 되려 오해로부터 비롯되어 농아인과 난청인들 사이의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갈등만을 야기해왔으며 또한, 제자리 걸음에 불과한 소모전에 일관된 논의는 많은 사람들을 농사회에 대한 환멸과 모멸감을 가지게 했다.
우리들은 농아인의 정체성이 곧 농사회의 정체성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 그러한 오해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수많은 책들과 주장들은 진리를 탐구코자 하는 우리들에게 방해가 되고 있다. 사실 일전에 농아인 강주해 목사가 지은 저서 '농아인이 누구인가' 라는 책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농교육을 전공하는 학자들과 수화통역사들을 좌우하여 농인들 사이에서 농문화, 농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바이블 정도로 언급되어져 왔다. 또한 데프TV의 초청으로 일본의 어느 농인단체들이 지은 책이 한국 농인들과 그 사회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서는 그 책들은 어디까지나 '농아인이 어떤 사람이다' 라는 견해의 진술에서 그쳐져 있다고 보며 그것들은 우리들이 여태까지 지속되어온 기존의 논쟁에 대한 한 모금의 시원한 청량제가 되기는커녕 농아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만 하고 있지 정작 농사회는 도대체 무엇인지 언급이 전혀 없으며, 농아인의 정체성이 곧 농사회의 정체성이라는 착각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폭 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우를 필자는 이 지면에서는 지양하도록 하고 새로운 접근을 통해 나의 주장을 피력하고자 하며, 그것이 우리들의 논의에 활기를 넣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거듭 강조하는 것이지만, 농사회의 정체성 탐구와 농아인의 정체성 탐구는 구별되어져야 한다. 애초부터 그 정체성 탐구를 위한 방법적 측면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정체성 탐구의 목적 또한 얼핏 보기에 비슷할지는 모르나 좀 더 깊이 들어가는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가 다루는 영역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농사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농사회의 여러 영역, 즉 스포츠, 음악, 미술, 역사 등에서 나타나는 농인적인 것의 특성을 찾아야 한다. 반면에 농인에 대한 고찰은 문화 인류적,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 특성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집이 세다는 것이 농인에게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이라고 해도 고집성이 농사회의 정체성이 될 수가 없다. NBA 역대 최강의 팀으로 불려 졌던 시카코 불스팀이라고 해서 그 팀을 구성하는 모든 선수가 마이클 조던처럼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것이 아님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지 않는가.
또한 각 포지션의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라고 해서 그 팀이 반드시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 각각은 최고일지 몰라도 그 선수들로 합성된 팀은 팀워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삼류 팀일 수 있다.
즉, 하나의 집단적 특성이 개개인의 특성과 동일하지는 않으며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공통된 특성이 하나의 집단의 특성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농사회의 정체성과 농아인의 정체성은 구별되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농사회의 정체성 탐구 방법으로 농사회의 각 분야의 공통 특성 내지는 공통 특성을 찾는 것을 제안코자 한다.
(아직..마무리 짓지를 못해서~계속 올리려는데.....글의 내용에 대해 더 좋은 생각이 있으신 분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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