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 Philosophy

농사회의 기득권자들

굴레를 벗어나 2023. 7. 29. 20:53

우연한 기회로 수화를 사이에 둔 농아인과 건청인의 페러다임의 충돌에 대한 주제를 가진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발표자들 사이에서도 건청인과 농아인이 어느 한 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적절히 배분되게 조처를 취한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 농인은 2명이었는데, 한 명은 젊은 측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40대 후반즈음의 농인이었다.

 

 처음에 건청인의 발표자가 내세운 내용이 나의 관점과는 상당히 달라서, 듣는 내내 나의 사유의 공간에서는 끊임없는 불폅화음과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것은 생뚱하게도 농인 어른이었다.

 

 농인 어른 답게 나이 어린 방청객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경험담을 이야기 하는 의도는 참 좋은 시도였는데, 그 경험의 차이가 너무나 컸던 탓인지 아니면 그 분의 버릇탓인지 모르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단 하나의 수화 때문에 보는 나로 하여금 짜증이 치솟았다.   짜증나게 만들었던 그 수화는 바로 이것이었다. "알어? 알어?"

 

 방청객들을 자신의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토론하고 주고 받으며 서로 배워나가야 할 동반자로서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 가르쳐야 할 존재, 미흡한 존재, 뒤떨어진 존재, 즉, 농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수혜받아야 할 존재로 전락시켜 버리는 농인 어른의 지엄한 태도가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고 할까.

 

 말 끝마다 "알았어? 알어?" 라는 수화를 남발함을 통해서 방청객들에게 '우리는 너무도 모른다' 라는 지뢰를 슬며시, 그것도 교묘하게 각인시켜 버리는 그 분의 무지막한 설교에대한 반발심은 나 혼자 전유되는 감정이 아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된 감정 그것이었다.

 

 물론 그분은 자신이 사용하는 '농식수화'를 건청인들이 제대로 못 알아 볼까봐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확인차 그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할 수 있겠지만, 미안하게도 그 자리가 수화에 대한 세미나였던 것만큼 방청객 수준도 꽤 높다는 것을 감안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즉, 그 분은 방청객을 위한 사전 파악과 함께 배려가 전혀 핀트가 엇나가는 그런 것이었던 것이다.

 

 나이와 경험, 장애의 유무, 수화실력, 그리고 사유의 깊이와 폭을 초월하여 서로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여야 농인과 건청인 사이의 벽을 허물수 있다고 부르짓었던 그 세미나의 주제를 생각하자면, 그 분의 수화 '알어?알어' 는 쓰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비단 농인어른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좀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거나,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싶은 잘못된 자존심을 내세우고 싶은 사람일수록 범하기 쉬운 잘못이 아니던가. 수도없이 보아왔던 수화 '알어? 알어?' 는 그런 사람일 수록 많이 쓴다는 것을 여러분도 다 아는 사실이며 경험했던 일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상대방에게 '알어? 알어!" 라는 수화를 남발하는 것보다는 좀 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폭 넓은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하는 점이다. 지식이 권력이 되고,나이가 폭력의 수단이 되고, 권위가 면제부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똑똑할수록, 특히 농사회에 존경을 받는 사람일 수록, 그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만, "알어? 알어?' 라는 수화를 남발하는 거만한 사람보다는 '그것 무슨 뜻?' 라는 수화를 부드럽게 표현할 줄 아는 경허한 생각을 지녔으면 한다. 또한 그럼으로써 농사회가 한 발자국 전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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