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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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

미운 오리 새끼

굴레를 벗어나 2023. 7. 29. 20:54

도서관에서 수업 자료를 찾던 중에 안데르센 동화책 '미운 오리 새끼'에 잠시 시선이 끌렸습니다.
매일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중증의 지체부자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해야 하는 저로선
일단, 학생과의 의사소통이 제일 큰 부담으로 다가 옵니다. 그런 아이들과 아침을 시작할 때
책을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제가 대신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일 책을 고르고 있었지요.

 

못난 오리가 이쁜 거위가 되어 푸른 창공을 아름답게 비상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 책을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들고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의구심이 좀 듭니다.

5년 동안 쌓아왔던 청각장애학교에서의 저의 퀄리티를 다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아무 것도 없이 또 다시 시작한다는 상황이 제 자신 스스로를 못난 오리 처럼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더구나나 이 곳은 지체장애학교지요. 학생과 의사소통, 동료 교사간의 소통 또한 큰 문제입니다.
같은 특수교사라고는 하지만 공립에서는 청각장애학교가 없으니,
그들에게는 청각장애인이 생소할 수 밖에요. 당연히 업무상에 이래저리 부딪히는 일이 많습니다.
소외되는 경우도 간혹 있구요.

 

그런 제가 백조의 무리(건청인 또는 동료교사)속에 끼어들고 싶은 속마음은 당연히 있겠지요.
부인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들이 조금 귀찮아 집니다.
좋게 말하면 메이저에 대한 욕망을 초월한걸까요.
조금씩은 마이너에 대한 익숙함이 더 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변해버린 제 시선으로 바라본 '미운 오리 새끼'의 책 내용 또한 곱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가 성숙한 백조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히 되찾았을 때,
그를 받아준 백조들의 사회는 곧 '닫힌 사회'가 아니었을까요.
같음만 껴안는 '열림'은 '닫힘'이 아닐까요.

 

미운 오리 새끼를 박대하는 오리 가족은 누가봐도 닫힌 사회이고
그런 미운 오리 새끼를 환대하는 백조들은 열린 사회이자,
현실의 우리들이 꿈꾸는 이데아의 존재들이라 흔히들 생각은 합니다만..
제가 보았을 때는 오리 가족도, 백조들도 모두 '우리' 라는 틀 안을 고수하는
'닫힌' 사회의 또 다른 전형일 뿐인 것 같습니다.

 

백조라는 그의 정체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이지요.
그러기에 백조들 사이에 즉각 동일화 될 수 있었던 거겠지요.
만약 그 '미운 오리'가 알고보니 '잡종오리'였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백조들과 친구가 되기 커녕 요리집에 털이 다 뽑힌채 거꾸로 매달려 언제 접시위에 요리로 올려질지
벌벌 떨며 지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그를 향햔 백조의 열림은 또 다른 닫힌 사회를 견고화 하기 위한 방편일 뿐인 것 같습니다.
백조가 '백조'뿐만이 아닌 '미운 오리' 또한 받아 들일 수 없었던 한계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동일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청각장애인인 나로선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귀가 들리지 않는 이상 그 한계를 매일 절감하며 지내야 겠지요.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청각장애인' 또한 각자  백조의 사회에 부름을
선택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겁니다. 그런 저의 친구들을 바라볼 때
이 책의 내용이 너무 역설적인 사실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 많은 밤입니다.


이럴 때 같이 술 한 잔 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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