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 Philosophy

들리지 않는 자의 외로움에 대하여

굴레를 벗어나 2021. 8. 27. 21:49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에는 늘 그들이 쏟아 내놓은 말들로 장벽을 쌓는다. 말로 쌓은 장벽의 두께는 말들의 심연을 가늠할 수가 없고, 그 장벽의 높이는 말들의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무의미한 말들로 쌓은 장벽은 마치 투명한 것처럼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여, 귀신조차 잡아내는 조요경마저도 짚어 낼 수가 없었다. 하얀 색 마스크는 장벽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회반죽처럼 철옹성의 위용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서 차별받고 있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의 찰나의 고민은 선의를 가장한 차별과, 호의를 등에 업은 무시로 가득 찬 그들의 허다한 말들 사이에 파묻히기 일쑤다. 메마른 사막의 버석거리는 모래처럼 거뭇한 마음 사이로 스잔한 바람이 한바탕 스치운다.

간혹, 진저리나는 외로움이 소스라치게 스며들 때, 분별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듯 분연하게 일어나 장벽 뒤에 숨어있는 저들을 당혹하게 한다. 차오르는 고함은 소리 없이 몇 번이나 나의 목을 통해 세어 나갔던가. 셀 수 없이 명멸하는 그 괴로운 순간이 쌓여 딱딱한 응어리가 마음을 둘러싸면, 통증이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것일까.

들리지 않는 것은 나의 죄는 아니었다. 다만 듣지 않음으로 인한 나의 죄와, 들음으로 인한 너희들 죄의 무거움은 저마다 가진 저울의 눈금이 다른 모양이다. 어찌 나에게만 가해지는 죄의 추궁은 추상같이 엄정하고 가혹한 것일까. 들리지 않는 자의 듣지 못한 죄와, 들리는 자의 듣지 못한 죄의 경중이 같을 수는 없다.

들리지 않는 자에게 가해지는 ‘외로움’은 아주 심각한 차별이다. 배제이자 격리이다. 팔, 다리가 없는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노골적인 비하는 차별이면서, 들리지 않는 자에게 ‘소통의 부재’는 대체 무슨 논리로 차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내 평생 '들리지 않는 자'에 대한 자신의 무례에 대해 사과를 하는 사람은 무척 드물었다. 부조리한 논리로 부조리한 현상을 짚어야 하는 그들의 허술한 맥락을 서글프게 바라볼 뿐이다.

부질없는 아픔과 공연한 쓰라림을 이별하기 위해 수많은 들리지 않는 자들은 혼자서 부유한다. ‘외로움’이 싫어서 ‘외로운 곳’으로 스스로 찾아가는 이 아이러니. 이 역설은 들리지 않는 자의 숙명과도 같다. 들리지 않는 자의 세포에는 ‘외로운 곳’으로 스스로 찾아가 욱신거리는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게 하는 자기 연민이 담겨 있다. 그 연민은 애잔하다.

이 가여운 영혼들을 어찌해야 할까. 들리지 않는 자들끼리 모여 부스럭거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쓰다듬으며 염려하는 것만으로는 이 지독한 외로움의 무게를 이겨낼 수가 없다. 동일한 아픔은 동일하지 않는 사연을 기반하고 있기에, 동일한 위로를 할 수가 없다.  전유된 개별적인 기억에 다가서는 방법은 오로지 그 지독한 외로움에 대한 감정의 촉수를 섬세하게 세워 더듬거리며 너라는 존재를 감지하는 것 뿐이다. 

들리지 않는 당신이란 사람이여. 갈무리 된 그것을 조용히 꺼내놓으라. 만질 수 없는 말로서가 아닌 보드라운 감촉으로 그대의 입술을 더듬어 읽고, 욱신거리는 그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손짓으로 그 외로움을 살며시 잘라 내어 나누면 그대 영혼에 자그마한 온기를 전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