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즈음에 어떠한 일로 장교조 위원장 집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깔끔하게 꾸민 그의 집 거실 벽에는 클로네 모네의 ‘수련’ 그림이 걸려 있었다. 몇 십년 전 모네의 전시회 때 견물한 실제 수련 연작 중 어느 하나의 그림이었다.(사실, 전시회에서 모네의 수련 작품의 실제 크기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집에 걸린 ‘그림’의 묘한 공간적 무게감 때문인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외부 사물의 본래 색깔과 형태를 왜곡된 정보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그당시 그린 그림의 특성이 전체적으로 푸른색을 띄게 된다. 암튼,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위원장에게 물어보았더니 워낙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실이었는지 스스럼없이 답하는 그 말 속에서 거실에 걸릴 그림으로 ‘모네’를 선택한 의도를 어렷품이 짐작해 본다. 모네는 인상파의 대가답게자신의 신체적 한계에서 오는 왜곡된 감각의 시각정보조차 재해석하고 본질 세계를 재구조화함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같은 감각장애인으로서 그런 모네의 발자취가 멋있어 보였던걸까.
문득 그러고보니 청각장애인이 거실에 걸릴 그림으로 어느 화가의 작품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깊은 고민 끝에 ’프란시스코 고야’가 가장 어울리지 않겠냐고 답할 것 같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자식을 삼키는 사트루누스(크로노스)’가 있는데, 검은 배경에 자식을 뜯어 먹는 크로노스의 귀괴한분위기를 선뜻 선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하다. (궁금하면 ’고야, 크로노스’를 검색해보시라)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모네같은 화풍(인상파)을 제쳐두고, 왜 하필 ‘고야’를 내세운 이유는 ‘고야’이야 말로 청각장애를 얻은 후 그의 작품이 소리로 대변되는 이성의 부조리함을 청각장애인의 예리한 시각적 감각으로 관찰하여 현실 비판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점이 같은 청각장애인이었던 운보 김기창의 친일 행위와 철저하게 대비되는 점이고, 운보의 현실 인식에 대한 한계라고 하겠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작품활동이 가장 왕성했었을 30대 중반에 청각장애를 얻은 후, 이전까지 궁전화가로서 그렸던 기존 봉건체제의 찬양에 가까운 전통적 화풍을 멈추고,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 전에는 전혀 관찰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이후에 이어지는 작품은 무척 놀라운데, 사회적 풍자와 비판이 가득한 [변덕]이라는 연작 작품집이 대표적이다.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 라는 작품 등 그는 유독 괴물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청각에 대한 감각 상실에서 오는 공허함의 분노보다는 시각에 의한 현실의 냉정한 인식에서 오는 분노로써 부조리한 이성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반대했고(’전쟁의참화’ 작품은 작가가 체험한 것을 사진 이상의 참혹함으로 드러낸다), 이성이 잠들어서 만들어낸 괴물보다, 이성이 만들어낸 괴물이 더 위험함을 경고를 했었다.
암튼, 청각의 상실이 스스로 사회와 단절되고 격리되어 살던 고야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반영해서인지 30대 후반에 그려진 그림의 대부분은어두운 배경이 특색이지만, 말년에는 다시 밝은 색채와 화폭에 감싸는 평온한 온기로 되돌아 온다. 말년에 이르러 시대와의 불화와 청각의상실을 정갈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던 걸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또는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봄날이 다가온다. 각자의 집에 걸릴 한 폭의 그림을 뭘로 할 지 즐거운 고민을 해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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