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의 색이라는 것이 하얀 눈에 모두 스며들었다. 스며든 것은 슬퍼서 녹아내렸고 그 위를 다시 하얗게 스며든 것으로 뒤덮어졌다. 찰나에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깨 위에서 짧은 어색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어깨 위에 쌓인 무거움의 가벼움이 힘겹게 견디웁다. 털어냈다.
버스를 탔다. 침묵만이 가득한 이 비좁은 버스 공간에 인간 군상은 하나 같이 스마트 기기에 시선이 몰려 있다. 명멸하는 세상이 네모난 기기 안에서 빠르게 지나가는데, 버스 창문은 하얀 김이 서려 있어 바깥 세상이 빠르게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다. 내 몸 안을 흔드는 세상의 어지러움만이 세상이 내 곁을 지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멈추는 정거장마다 소멸된 소리가 연이어 나는데, 그 소리가 나에게 닿지 않는다. 창문은 이미 투명한 물방울에 섞여서 빛이 녹아 내렸고, 일그러진 세상은 기괴해서 내 마음을 떨리게 했다. 내릴 곳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짐작할 수 없는 나의 가엾은 짐작은 초라해서 정거장마다 열리는 문틈으로 초초하게 눈동냥을 해야 했다.
눈이 내린다.
'- Philosoph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 (0) | 2023.05.18 |
---|---|
‘감각 번역’에 관하여 (1) | 2023.02.04 |
U.S. Department of Education Reasonable Accommodation Handbook (0) | 2023.01.06 |
통역의 한계 (0) | 2023.01.06 |
내일 (1) | 2023.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