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 Philosophy 50

출근 길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의 색이라는 것이 하얀 눈에 모두 스며들었다. 스며든 것은 슬퍼서 녹아내렸고 그 위를 다시 하얗게 스며든 것으로 뒤덮어졌다. 찰나에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깨 위에서 짧은 어색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어깨 위에 쌓인 무거움의 가벼움이 힘겹게 견디웁다. 털어냈다. 버스를 탔다. 침묵만이 가득한 이 비좁은 버스 공간에 인간 군상은 하나 같이 스마트 기기에 시선이 몰려 있다. 명멸하는 세상이 네모난 기기 안에서 빠르게 지나가는데, 버스 창문은 하얀 김이 서려 있어 바깥 세상이 빠르게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다. 내 몸 안을 흔드는 세상의 어지러움만이 세상이 내 곁을 지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멈추는 정거장마다 소멸된 소리가 연이어 나는데, 그 소리가 나에게 닿지 않는..

- Philosophy 2023.01.06

U.S. Department of Education Reasonable Accommodation Handbook

서울시교육청의 청각장애교원을 위한 통역편의 미제공에 대해 국가인권위 차별진정을 진행하면서 관련 자료를 주변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ADMINISTRATIVE COMMUNICATIONS SYSTEM UNITED STATES DEPARTMENT OF EDUCATION(미국 교육부의 행정 대응 시스템)' 이라는 제목의 U.S. Department of Education Reasonable Accommodation Handbook(미국 교육부의 합리적 편의 지원 핸드북) 파일을 읽어 보게 되었는데, 한국의 교육부와 비교하게 되면서 통탄할 문장이 많이 등장한다. "The Department of Education’s goal is to be a model among Federal agencies for a pr..

- Philosophy 2023.01.06

통역의 한계

https://v.daum.net/v/20230103063002815 나는 일상적 공간에서의 통역 수단으로서는 수어통역사를 선호한다. 화자와 청자간의 발화에 스며드는 배경과 시기, 장소 등에 따라 유의미하게 달라지는 내용을 캐치하려면, 같은 언어 공간에 경험을 향유하는 수어통역사의 수고보다 더 와닿는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의 의미를 정제하고, 개념의 범위를 분명하게 정의지어야 하는 특정한 공간에서는 원어를 그대로 싣어 나르는 '문자통역사'를 선호한다. 이를 테면 학술제나 연수, 회의, 토론 등에서 양자간 인식의 접점을 맞추려면 통역이나 번역을 통해 재해석된 의미보다는, 원어의 그 자체의 직접적인 전달이 의사소통의 수고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게다. 특히, 이중언어의 경험과 지적인 수준..

- Philosophy 2023.01.06

내일

피말리는 임용고시 2차가 오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사립 채용도 진행중이다. 어느 동료 샘으로부터 '자소서'를 좀 살펴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래저래 첨삭을 해주고 나니, 글 잘 쓴다는 헛소문(?)이 입과 입을 타고 절박한 다른 이에게 전해졌다. 덩달아 다른 샘에게서도 '자소서'를 살펴봐달라는 청탁 아닌 청탁이 들어온다. 그들의 사정이 절박해서 그들의 글이 질박했고, 엉클어진 그들의 자소서를 읽는 나의 마음도 고박한 씀씀이에 곡진해졌다. 자동차 오토슬라이드 고장이 났으나 부품이 없어서 2달 내내 말썽이었던 차에 , 드디어 부품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조퇴를 했다. 정비기사님이 차를 아껴서 부드럽게 사용하라는 당부를 한다. 하나 둘씩 아픈 곳이 차츰 드러나는 자동차로 인해 어두워져 가는 내 마음의 기색이 ..

- Philosophy 2023.01.06

베토벤 9번 교향곡, 그리고 헬렌 켈러

’어둠과 멜로디, 그림자와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 순간, 그토록 위대한 곡을 만든 음악가가 저와 같은 청각장에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청력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그런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준 불멸의 정신력에 경탄할 뿐입니다. 저는 라디오 앞에 앉아서 스피커에 손을 얹은 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환희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와 내가 똑같이 느꼈을 고요함 속에서 거대한 파도처럼 부서지는 웅장한 교향곡을 느끼면서 말이지요.‘ 1924년 2월 1일 뉴욕시 라디오 방송국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생방으로 보냈고, 때마침 헬렌 켈러는 스피커 진동판에 손을 얹고 불후의 명곡을 들은 후, 위와 같은 감상을 남겼다.

- Philosophy 2023.01.06

청각장애 아동에게 음악적 경험의 중요성

https://youtu.be/YS7-7M6atKo 예전에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가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해서 올렸더니, 신묘한 유튜브의 알고리즘으로 소리없이 지희동작만 보고 곡을 맞히는 영상을 소개시켜준다. 무척 흥미롭게 살펴봤다. 물론, 영상에 나온 두 지휘자는 지휘동작의 박자, 연주자의 동작, 악기편성 등의 여러 가지 시각적 정보와 본인의 경험을 단서로 곡을 거의 다 맞추었다. 이런 과정은 청각장애인이 소리의 세계를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터득하는 기술과 매우 유사하다. 뒤집어 말하면, 특히 청각장애 아동에게 다양한 소리의 경험(여기서는 직접 참여의 경험)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악기를 직접 연주를 해보면서 악기가 전해주는 미세한 떨림을 피부로 느껴봐..

- Philosophy 2022.10.28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임기의 끝에서

https://youtu.be/UhEZHiRcFVw 장교조 집행부의 임기가 이제 끝이 다가온다. 여태껏 지나 온 길에는 내세울만한 가시적인 성과나 자랑할 만한 일들로 꾸미고 싶은데, 그것은 얄팍한 욕심이었다. 살펴보니 조합원 앞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드는 일보다는 조합원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일이 명멸했고, 길이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는 뇌리에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일들이 자박자박하게 뇌리 속을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일이 많아 힘들어 하는 다른 집행부를 도와주기 보다는 내가 짜증을 내는 일이 더 많아서 부끄러웠다. 지지부진했던 교섭도 결국 끝맺음을 못한 채 다음 집행부에게 무거운 짐처럼 떠넘기게 되었다. 천둥벌거숭이마냥 아는 것도 없이, 의욕만 가지고 덤빈 나의 무모함과 고집 탓이었다. 지나고 보니, 임..

- Philosophy 2022.10.12

언어의 통역에 대하여

오늘 학교에서 청각장애 선생님과 함께 수어로 물품용역선정 절차에 관한 업무적인 얘기를 나누던 중에 '견적서' 라는 수어 어휘를 몰라서 지화로 사용했다. 저녁에 문득 '국립국어원 수어사전'에서는 '견적서'라는 수어 어휘가 있는지 검색해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들어서 '노동조합' 이라는 수어 어휘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노동'과 '근로'는 엄연히 철학적인 베이스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국 수어사전에서는 동일하게 표현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단순히 해당 어휘의 카테고리가 오역을 하게 되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언어세계의 위계구조의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예를 들어 '근로(부지런히 일하다)'라는 어휘는 사용자(자본주의의 지배자)의 질서 개념이 투영되어 있다. 반..

- Philosophy 2022.09.14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창립기념식'

나는 나의 삶이 평탄하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것은 필연성은 없으나, 이유없는 바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삶의 진리를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 약동하듯 넘치는 햇살이 새파란 나의 청년시절을 힘껏 껴안아도 부족할텐데, 나의 청춘은 지극히 고단했다. 대학시절 장애대학생의 교육권을 위해 전국을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흘린 땀들과, 영원할 것 같은 뜨거웠던 열정은 어느덧 고갈되어 풍화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장애를 가진 것이 한스럽다 여기자니, 되려 메말라 버석거리는 나의 '알량한 자존감'이 아우성이다. ‘영원’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 매고 길 없는 사막을 부유하듯 건너는 괴로운 낙타의 심정이 그러할까. 어느 덧 시간의 바람이 내가 서 있는 교단을 스쳐서, 분노와 체념이 섞이는 그 소리에는 아무런 의미..

- Philosophy 2022.07.06

살아온 나날, 힘겹던 날

1980년 4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치솟는 고열탓인지 첫 울음이 들린지 얼마되지 않은 조그마한 신생아의 뇌를 열어 염증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사 말에 그 당시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도리는 없었다. 아이가 곧 죽을테니 출생신고를 하지 말라는 주변의 얘기 때문인지, 내 생의 증명은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았기에 증명할 수 없는 존재를 친지들 입가에 증명하듯 옮겨졌다. 3개월 후 뒤이어 태어난 사촌 동생으로 인해 나의 생이 흔적없이 소멸되더라도 ‘형’으로서 죽어야 한다는 숙명으로 만들어진 서류상 나의 생일은 그래서 의미가 생겼고, 그래서 의미가 없었다. ‘청각장애’라는 진단명은 부모님이 홀로 감당해야 하였고, ‘외로움’이라는 숨겨진 증상은 내가 홀로 감당해야 하였다. 청각장애 학생에..

- Philosophy 2022.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