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들

지나간 것은 잊혀지는 마음으로, 다가올 것은 스쳐가는 마음으로

잊혀지는 모든 것들의 총체 62

살아온 나날, 힘겹던 날

1980년 4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치솟는 고열탓인지 첫 울음이 들린지 얼마되지 않은 조그마한 신생아의 뇌를 열어 염증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사 말에 그 당시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도리는 없었다. 아이가 곧 죽을테니 출생신고를 하지 말라는 주변의 얘기 때문인지, 내 생의 증명은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았기에 증명할 수 없는 존재를 친지들 입가에 증명하듯 옮겨졌다. 3개월 후 뒤이어 태어난 사촌 동생으로 인해 나의 생이 흔적없이 소멸되더라도 ‘형’으로서 죽어야 한다는 숙명으로 만들어진 서류상 나의 생일은 그래서 의미가 생겼고, 그래서 의미가 없었다. ‘청각장애’라는 진단명은 부모님이 홀로 감당해야 하였고, ‘외로움’이라는 숨겨진 증상은 내가 홀로 감당해야 하였다. 청각장애 학생에..

- Philosophy 2022.06.27

우리 안의 블루스(수어는 농인의 언어)

우리들의 블루스 15화 중 별이와 기준이의 대화중에 기준이가 어설픈 수어로 말을 건네자, 별이가 '갑자기 네가 왜 수어를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피상적으로 비장애인들이 농인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수어'를 배우거나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흔든 중요한 포석이다. 뒤이어 나오는 별이의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수어는 농인의 말이다.' '수어는 농인의 말' 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왜 별이는 수어를 쓰는 기준이에게 짜증나는 듯이 말했을까. 사실 드라마가 진행되는 여러 회차에서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별이에게 간간이 수어를 쓰는 장면이 스쳐지나가지만, 그런 주변인들에게 별이는 '수어는 농인의 말'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들먹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기준이에게만 단호하게 그 명제를 내세..

- Philosophy 2022.06.12

'불확정성의 원리'와 장애인 담론에 대하여

하이젠베르크는 관찰자의 관찰 행동 자체가 전자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온도계 자체의 열 때문에 물의 온도 그 자체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격이랄까. 이와 관련된 유명한 얘기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암튼, 이러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나중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의 한계를 짚음과 동시에 '양자 역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장애인 복지와 장애인 교원을 위한 지원'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군가가 관찰하는 '장애인의 현실'은 그 관찰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준석과 박경석의 토론 장면에서도 익히 보았듯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이것밖에 없다'와 '이..

- Philosophy 2022.04.20

공정하다는 착각

어느 모임에서 '경증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수능시험(영어듣기)의 지필고사 대체 가능' 문구를 두고 살짝 논쟁이 벌어졌다. 나의 입장은 청각장애의 정도가 가볍거나,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어음 변별력에서 청인과 동등한 수준의 청취가 어렵기 때문에 경증청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필요시 지필시험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이었고, 이를 반대하는 이의 입장은 '영어듣기시험을 지필시험으로 대체할 경우 비장애인 학생에 비해 과도하게(?) 유리하므로 '역차별'이다 라는 점이 요지였다. 경증 시각장애 학생과 경증 지체장애 학생을 위한 시험시간 1.5배 연장은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독 경증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공정한 잣대'에는 왜 논쟁이 발생하는 것일까? 보이는 신체적, 물리적 손상에 대한 지..

- Philosophy 2022.04.17

타자화의 위험에 대하여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기 전, 가족들과 캠핑을 간 그 날 야심한 밤에 나 홀로 깨어 은하수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깊은 푸른 심연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들의 향연들에는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 같았다. 멈처진 시간속에서 지구위에 서 있는 나란 존재의 미약한 숨결과 광대한 공간들의 교향곡이 마치 일치되는 고양감은 지금도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그 때, 카메라에 담긴 은하수의 모습을 보면서 빅뱅 이전 모든 만물의 시작점을 떠올려보았다. 176센티미터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 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빅뱅 시점의 수소와 헬륨의 원자일테다. 별 하나에 서로 추억을 묻은 그 사람과도, 미워서 돌아섰던 그 사람과도, 내가 상처를 줬던 그 사람과도, 본질은 똑같은 하나의 수소와 헬륨에서 같이 태..

- Philosophy 2022.03.27

나의 거실에 걸릴 한 폭의 그림을 고른다면?

2월 즈음에 어떠한 일로 장교조 위원장 집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깔끔하게 꾸민 그의 집 거실 벽에는 클로네 모네의 ‘수련’ 그림이 걸려 있었다. 몇 십년 전 모네의 전시회 때 견물한 실제 수련 연작 중 어느 하나의 그림이었다.(사실, 전시회에서 모네의 수련 작품의 실제 크기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집에 걸린 ‘그림’의 묘한 공간적 무게감 때문인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외부 사물의 본래 색깔과 형태를 왜곡된 정보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그당시 그린 그림의 특성이 전체적으로 푸른색을 띄게 된다. 암튼,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위원장에게 물어보았더니 워낙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실이었는지 스스럼없이 답하는 그 말 속에..

- Philosophy 2022.03.16

수어통역의 '한계'와 대안에 대하여

대선 후보 TV 토론 과정에서 촉발된 수어통역사들의 오역 내지 자질에 대한 일련의 지적은 수어뿐만 아닌 모든 언어의 통번역 과정에서 직역이냐 의역이냐라는 대립구조의 논의의 틀에서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잘못된 문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어통역을 할 때 맞닥뜨리는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한국어'에서 '한국 수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동등한 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서 말해진 것'이라는 부분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물론, 수어통역사의 기본 자질-무의미한 습관적 수어 사용 등-는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즉, '한국어'라는 순수한 언어를 둘러싸고 있는 언어 사회적 헤게모니를 '어떤 방법으로 그와 다른 구조와 특성을 가지는 한국 수어를 통해 말할 것인가?'..

- Philosophy 2022.03.10

각 시도교육청의 근로지원인 제도 도입에 대하여

안녕하십니까.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수석 부위원장 배성규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장차법 제11조에서는 사용자는 장애인이 해당 직무를 수행할 때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한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장애인교원에 대하여 서울시교육청과 각시도교육청, 더 나아가 교육부를 비롯하여 정부는 헌법과 관련 법령에 근거한/ 국민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이 장애인교원들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을 권리를 박탈한 것은 법을 무시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경악할만한 비인간적인 사건이 장애인 교원들의 수많은 고충 상담을 통해서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작년 어느 지체장애인 교원은 업무상의 배제로 자살 충동 ..

- Philosophy 2022.02.25

서산마애삼존불상에 대해

10년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백제의 미소’라며 극찬을 했던 서산마애삼존불상을 실견하기를 원했었는데, 우연찮게 명절 귀성길에 들리게 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뛰어난 구라와 글빨(?)에 묻어나는 그 감동을 나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나의 수준 낮은 심미안이 그 아름다움을 캐치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안고서 살펴 보았다. 사진을 찍을 때 조명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조명이 사진의 9할이랄까. 조명의 종류에 따라 주광과 측광, 조명의 방향에 따라 직광, 측광, 사광으로 나뉘는데, 사진과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조명의 방향이다. 직광(정면광)은 인물을 단지 건조한 피사체로서 기능하도록 입체적인 개성을 죽인다. 측광(측면광)은 인물이 ..

- Philosophy 2022.01.28

친절에 대하여

하버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거대한 비대칭'이라 명명하며 세상의 잔혹한 1번의 행위는 1만번의 친절한 행위로 상쇄될 것이다' 하고 했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1만번의 친절한 행위와 1번의 잔혹한 행위는 늘 서로 가리워져 쉽게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간혹 뉴스에 나오는 소름끼치는 사건을 보며 우리는 탄식과 멸망의 징조를 읊조리지만, 뉴스에 언급되지 않은 1만 번의 평범한 친절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 아침에 어린이집에 딸을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어제 내린 눈들로 하얗게 변한 길 위에는 마치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서툰 걸음걸이가 펼쳐졌다. 나도 딸이 넘어질까봐 손을 잡아주면서 조심스럽게 ..

- Philosophy 2022.01.20